의약품 국제일반명(INN), 그것이 알고싶다
- 국제일반명(INN)과 성분명 처방 혼용돼 사용… 전혀 다른 개념
- INN 글로벌 관리주체는 WHO… 9500개 INN 리스트 등재
- 미국 영국 등 제약강국 INN 도입으로 의약품 작명 규칙 세계 통일화
약사회와 약학계를 중심으로 의약품 시판허가 시 제품명(이름)을 현재 채택중인 ‘개별 상품명(브랜드 네임)’이 아닌 ‘국제일반명(INN)’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INN을 도입해 단일 성분 별 약품명을 세계 공용어로 통일하면 의약품을 연구하고 처방·조제·판매하는 의사와 약사 간 의사소통이 활발해지고 최종 소비자인 환자 알 권리가 크게 증진되며 메디케이션 오류가 급락할 것이란 게 이들의 시각입니다. 아울러 부수적 효과로 오리지널약의 제네릭 처방이 활성화 돼 건보재정 절감 효과도 기대됩니다. 데일리팜이 INN이 무엇인지 문언적·실제적 정의와 도입 필요성을 살피고 해외사례 등을 알아봤습니다. [편집자주]
- 국제일반명, 선진국은 이미 활성화…요원한 국내 도입
- INN, 소비자 알 권리·조제오류·건보재정에 미칠 효과는
다수 제약 선진국이 채택하고 있는 ‘국제일반명(INN)’은 우리나라에서 여전히 낯선 소재다.
쉽게 말해 INN은 세계가 공통으로 사용하는 ‘통일된 의약품 제품명’으로, 주성분명을 중심으로 공통 규칙을 거쳐 만들어지는 의약품 작명방법을 지칭한다.
국내에서는 한때 약품 작명법인 INN과 처방법인 ‘성분명 처방’이 혼용돼 잘못 쓰이면서 전문가인 의·약사 조차 INN의 본래 취지를 오해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제일반명, 너 이름이 뭐니?=INN(International Nonpropietary Names)의 정체는 심플하다. 한 마디로 화학합성의약품과 바이오생물의약품 등 약 이름을 짓는 ‘작명법’이다. 현존하는 약 이름을 주성분명을 근거로 한 ‘만국 공통어’로 짓자는 게 제도 취지다.
예를들어 발기부전약 성분인 실데나필을 예로 살펴보자. 2019년 5월 현재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시판허가한 실데나필 성분 전문약 갯수는 100여개에 달한다. 오리지널 비아그라(화이자) 외 팔팔, 프리야, 실비에, 아레나필, 비아맥스, 이그니스, 파텐션, 발탁스 등 저마다 브랜드명으로 허가됐다.
실데나필 한 개 성분 당 100여개 브랜드명을 허락하지 말고, 성분명을 중심으로 한 만국 공통어인 국제일반명을 정해 단일 제품명으로 시판허가 하자는 게 INN 제도의 핵심이다.
이렇게 되면 각기 다른 브랜드명이 사라져 INN을 도입한 세계 의·약사와 환자가 한 개 성분에 대한 동일한 일반명을 공통으로 쓰게 되면서 불필요한 혼란이 사라지고 알 권리 신장과 조제오류 축소 효과까지 볼 수 있다는 게 약사회·약학계 등 INN 찬성론자의 시각이다.
INN 도입 필요성은 지난해 고혈압제 발사르탄 내 발암의심물질 함유로 판매중지와 제품 회수 조치가 결정됐을 당시 문제 물질 함유 발사르탄이 500여개가 넘고, 각기 부여된 브랜드명이 수 백여개에 달해 회수에 애를 먹으면서 한 차례 조명되기도 했다.
INN의 글로벌 관리주체는 세계보건기구(WHO)다. WHO는 1950년 세계보건회의결의안을 근거로 INN의 최초 확립 후, 같은해 의약 물질 일반명 리스트를 발표했다. 현재 약 9500개 INN이 리스트 등재됐다.
WHO는 신청 가이드라인과 양식에 따라 INN을 확정한다. 세계 각국 역시 자체 의약품 규제주체가 단일 성분에 대한 단일 INN 확정 후 WHO 내 INN 전문가 그룹 심사를 거쳐 최종 승인을 얻는다.
◆INN 도입, 해외와 국내 현황은=미국과 영국 등 유럽 일부 국가, 일본 등 세계 제약강국으로 평가되는 나라들은 이미 INN 도입으로 의약품 작명 규칙 세계 통일화에 앞장서고 있다.
구체적으로 미국은 USAN(United States Accepted Names), 영국은 BAN(British Approved Names), 일본은 JAN(Japan Adopted Names)이 WHO에 제출할 INN을 정한다. 아울러 미국과 영국, 일본은 기본적으로 의약품 명명체계가 WHO INN과 유사한 상황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아직 INN은 물론 국내 의약품명 규제 위원회조차 없는 실정이다. 의약품 규제기관인 식약처가 자체 허가심사가이드라인에 따라 특별한 문제가 없는한 개발사(제네릭사)의 브랜드명을 그대로 시판허가 한다.
결국 국내 INN이 도입되려면 식약처 주도의 국내 의약품 명명기구 ‘KAN(Korean Adopted Names)’ 설립이 선행돼야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실제 덕성여대 약학대학 문애리 교수 연구팀은 지난 2007년 ‘생명공학의약품의 INN 명명체계 조사’ 연구에서 KAN 설립을 제안했었다. 해당 연구는 당시 식약청 용역연구 과제로 수행됐다.
당시 문애리 연구팀은 “INN 명명법 도입을 위해 KAN 구성이 필요하다. 명명기구 역할과 성격에 따라 어느 조직 산하에 둘지 결정돼야 한다”면서 “식약청, 제약협회, 대한약전위원회 등 협의를 거쳐 국내 실정에 맞는 명명기구 확립을 위한 세밀한 검토가 요구된다”고 밝혔었다.
◆해외 의약강국은 INN 왜 도입했나=INN을 도입한 해외 국가는 약제비 지출 억제를 위한 제네릭 처방 활성화가 INN 목적인 경우가 대다수다.
INN을 가장 선제적으로 도입했다고 평가되는 스페인은 INN 도입 이전인 2001년 상품명 처방이 보편화 되고 제네릭 처방이 희박한데다 대체조제율 마저 떨어져 약제비가 상당했다.
특히 만성질환 환자들은 가격과 약효 간 상관관계를 잘못 이해해 제네릭을 꺼려하고 오리지널약을 선호하는 경향이 높았다.
스페인 중앙정부는 과도한 약제비 지출 문제 타파를 위해 정책을 고심했지만, 규제방안 수립에 애를 먹었다.
이때 스페인 안달루시아 약사회와 지역 약사회, 현지 의사들이 모여 ‘INN 처방’을 논의한다.
INN 처방과 조제의 가격상한선을 두 번째로 가장 저렴한 약가로 설정하고, 약사의 대체조제를 자유롭게 인정해 6개월 마다 의약사 간 상호점검하는 게 해당 논의 골자다.
결과적으로 안달루시아 지방은 INN 처방·조제를 위한 컴퓨터 프로그램이 개발돼 현지 의사들은 처방 시 의약품을 상품명이 아닌 INN으로 선택하는 환경이 구축됐다.
성과는 현저했다. 환경이 마련되자 안달루시아 INN 처방률은 2001년 0.35%에서 2011년 86.89%로 크게 증가했다. 2017년 12월엔 93.38%까지 늘었다.
스페인 안달루시아 보건청(SAS)는 INN 처방으로 2001년부터 2011년까지 약 11년 간 약제비가 5억1039만 유로(한화 약 6797억원) 절감됐다는 보고를 내놓기도 했다.
이웃나라 일본도 2006년부터 인구 노령화와 의료비·약제비 절감책 일환으로 INN을 도입하고 대체조제 활성화 정책을 폈다.
일본의 2004년 제네릭 시장 점유율은 7%에 불과했다. 당시 일본 의사의 상품명 처방 선호 현상과 약사 대체조제 허용 불가 정책이 영향을 미친 결과다.
일본은 의사의 INN 처방을 의무화하는 정부 규정은 없지만, INN 도입과 함께 약사 대체조제 활성화로 제네릭 사용량을 늘리는 정책을 채택했고, 십여년이 지난 2017년 일본 내 제네릭 점유율은 70%로 급증했다.
◆가깝고도 먼 사이 ‘INN’과 ‘성분명 처방’=이처럼 INN과 성분명 처방은 사이가 가깝고도 멀다. 정확히 말하면 INN은 의약품 명명법, 성분명 처방법은 의사의 약물 처방법으로 서로 구분된다. 통용돼서 쓸 수 없다는 말이다.
다만 의약품 명명법이 현재 상품명에서 INN으로 바뀌고, 시판허가 역시 INN으로 전환 될 경우 자연스럽게 의사가 처방을 상품명으로 하더라도 실제적으론 INN 처방되는 반사 효과가 기대된다.
더 깊숙히 들여다보면, INN의 도입 취지는 의약사와 환자 간 의약품명을 전세계 통일하자는 것으로, 처방법에 직접 영향을 주자는 제도는 아니다. 의약품 이름의 통역사 역할을 하는게 INN의 존재 이유다.
실제 INN이 국내 도입되더라도 의사는 상품명과 성분명 중 원하는 것으로 처방할 수 있어, 처방법에 직접적으로 간섭을 받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INN의 기본 골격이 의약품 주성분에 기인한다는 면에서 일부 의약사들이 INN을 성분명 처방과 혼동하는 경우가 나온다.
INN 전문가인 중앙약대 서동철 교수는 INN과 INN 처방을 명확히 구분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INN은 중립적 명명법이고, INN 처방은 성분명 처방과 사실상 동음이의어로 쓸 수 있다는 게 서 교수 설명이다.
특히 서 교수는 INN을 도입하는 과정에서도 순수하게 WHO가 인정하는 국제일반명으로만 도입해야 한다고 했다. 성분명에 개발 제약사를 붙이는 형태는 현재 상품명 허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서 교수는 “INN을 국내 도입하려면 WHO가 인정한 성분명만 인정해야 한다. 현재 일부에서 제약사 이름과 성분명을 결합한 형태로 도입을 주장하는데, 이는 현재 제품명과 똑같다”며 “INN 도입 후 INN 처방으로 넘어가면 국내 의약품 처방 패턴이 제네릭 중심으로 바뀔 것”이라고 전망했다.
의약품 규제당국인 식약처도 INN 도입 필요성에 대한 판단을 사실상 유보한 상태다.
INN이 단순 명명법 도입 이상의 의미를 가질 수 있고, INN 도입으로 국내 의약품 허가명 시판허가법도 영향을 받게 될 수 있다는 분석이 판단 유보에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식약처 관계자는 “과거 바이오약 해외 수출을 위해 INN 등 의약품 명명법 정비 필요성이 제기됐었지만, 제약산업에 미칠 영향 등을 고려해 신중 검토해야 할 의제”라며 “현재 INN 관련 내부 논의되는 사항은 사실상 없다”고 답했다.
결과적으로 INN의 국내 도입 필요성을 어필할 주체는 약사회와 약학계가 될 것으로 보인다. 약사들이 얼마나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INN 명명법과 INN 처방 실효성을 대정부, 대국민 설득할 수 있을지 여부가 국내 도입 관건이 될 공산이 크다.
서 교수는 “약사회 전임 조찬휘 회장 집행부는 INN과 INN 처방 도입에 앞장섰다. 최근 바뀐 김대업 회장 집행부는 INN 의제를 어떻게 끌고갈지 더 살펴봐야 한다”며 “식약처 등 정부가 주도적으로 INN을 이끌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이정환 기자 (junghwanss@dailypharm.com)
References: 데일리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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