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물 제형에 따른 특징
5000만달러 이상. 한화로 약 570억원이 넘는 비용이 ‘이것’ 하나를 개발하는 데 쓰입니다. 약물의 형태, 즉 제형입니다. 특히 먹는 약(내복약)에서 제형은 환자의 복약 순응도와 약물 흡수, 부작용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입니다. 캡슐제, 알약(정제), 가루약(산제·과립제), 물약(시럽·액제) 등 약의 형태가 저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겁니다.
내복약은 위장을 거쳐 체내 흡수된 뒤 간에서 처리된 후 혈액을 통해 전신에 영향을 미칩니다. 복용이 간편하고 소화기관 등에서 1차 처리돼 주사제보다 부작용이 적다는 장점이 있죠. 내복약의 제형은 이런 두 가지 요소를 극대화하는 쪽, 그러니까 복용 편의성과 흡수력을 고려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알약은 제조비가 낮고 보관이 간편해 제약사가 가장 선호하는 제형입니다. 그런 만큼 종류가 다양한데요, 크게 코팅이 되지 않은 나정과 코팅이 된 제피정으로 나뉩니다. 나정은 맛과 향이 자극적이지 않고 복용 후 바로 분해·흡수돼야 하는 약물에 쓰입니다. 제피정은 복용할 때 거부감을 줄이려 나정의 겉을 설탕(당의정)이나 합성수지(필름코팅정)로 감싸 넘기기 쉽게 만들어진 제형입니다.
캡슐제는 약물을 젤라틴이라는 물질로 만든 캡슐에 넣은 약을 말합니다. 단단한 경질캡슐과 부드러운 연질캡슐이 있고 주로 경질캡슐에는 가루약이, 연질캡슐에는 물약이 들어 있습니다. 약효를 내려면 일정량 이상을 먹어야 하는데 그냥 복용하기엔 자극이 강해 캡슐에 담아 거부감을 줄이는 겁니다. 알약으로 만들 때 압축 과정에서 약효가 떨어질 수 있는 약물을 캡슐제로 만들기도 합니다. 상대적으로 부피가 크고, 소화기관에서 불어서 터지며 흡수돼 복용 시 속이 불편할 수가 있습니다. 젤라틴은 콜라젠을 뜨거운 물에 녹여 추출하는 일종의 단백질인데요, 구강·식도에 달라붙어 염증·궤양을 일으킬 수 있는 만큼 반드시 충분한 양의 물(1컵 이상)과 함께 복용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타이레놀, 타이레놀ER은 작용 시간 각각 달라
캡슐제의 캡슐이나 제피정의 코팅은 복용 편의성을 높이는 것 외에 다른 목적으로도 쓰입니다. 약효성분의 흡수 시간, 흡수 속도, 흡수 부위를 결정짓는 ‘장치’이기도 하죠. 약효가 체내에서 오래 지속돼야 할 때, 약물이 위에서 파괴되거나 위장장애를 일으키는 경우 장에서만 작용하도록 이런 제형을 적용하기도 합니다. 전자를 서방형 제제, 후자를 장용정(장용캡슐)이라 부릅니다.
서방정 제제는 녹는 시간을 다르게 만든 약물을 층층이 쌓거나, 이렇게 만든 약물을 한 캡슐에 담아 작용 시간에 차이를 둡니다. 예컨대 약의 표면은 빠르게 녹고 속은 천천히 녹는 약물을 써 순차적으로 체내 흡수되게 하는 식입니다. 복용 횟수를 줄일 수 있고, 혈중 약물 농도를 오랜 시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것이 가능해 부작용 위험이 적습니다. 진통제, 고혈압치료제, 당뇨병치료제 등 다양한 약에 서방형 제제가 적용되는 이유입니다.
이런 서방형 제제는 제품명에 ‘ER, XR, SR, CR, 오로스, 서방, 지속’이란 용어가 함께 표기돼 있습니다. 예컨대 자주 먹는 진통제 중 하나인 타이레놀도 일반 제제는 타이레놀, 서방형 제제는 타이레놀ER로 나뉩니다. 유효성분은 같지만 약효 지속 시간은 타이레놀ER이 8시간으로 타이레놀(4시간)과 비교하면 2배가량 깁니다. 각 제형에 따라 복용 간격이 달라지는 만큼 사전에 이를 꼭 확인해야 과다 복용으로 인한 부작용 위험을 줄일 수 있습니다.
장용정(장용캡슐)은 위가 아닌 장에서 작용하도록 만들어진 제형입니다. 약물을 감싼 코팅이나 캡슐이 강산인 위산에서는 녹지 않고 알칼리성인 장액에 녹습니다. 위 점막을 자극하는 아스피린, 장에 흡수돼야 하는 변비약 등에 주로 적용됩니다. 장용제는 알칼리성이 강한 우유·제산제와 함께 먹으면 약효가 감소할 수 있어 2시간 정도 간격을 둔 뒤 복용하는 게 좋습니다. 이런 서방형 제제나 장용정(장용캡슐)은 함부로 쪼개거나 씹어 먹으면 안 됩니다. 설계한 흡수 시간·부위가 달라질 뿐만 아니라 복용한 후 갑작스럽게 혈중 농도가 올라가게 돼 부작용 위험이 커지기 때문입니다.
가루약(산제·과립제)은 크기가 큰 알약·캡슐제보다 먹기가 더 편합니다. 위장에서 쉽게 녹아 흡수돼 약효도 상대적으로 빨리 나타나죠. 노인이나 아이들이 이런 제형을 처방 받는 경우가 많은데요 체중에 따라 약물 용량을 미세하게 조절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일부 아이들은 가루약의 쓴맛을 싫어할 수 있는데 이럴 땐 주스·요구르트와 섞어 볼 안쪽에 발라준 뒤 물과 함께 넘기도록 지도하면 됩니다.
현탁액은 잘 흔들어 마셔야
물약에는 시럽제와 액제가 있습니다. 시럽제는 당류를 물에 녹인 뒤 약물과 색소를 섞어 특히 아이들이 먹기 좋게 만든 제형입니다. 시럽제는 끈적끈적해서 스푼·컵 등에 남기 쉬운데요. 남은 약도 물을 타 끝까지 마셔야 합니다. 액제는 복용이 편하도록 약효성분을 물·알코올에 녹여 만듭니다. 흡수가 빠르고 알약·캡슐제보다 소화 시 자극이 적다는 장점이 있어 멀미약 등에 자주 적용됩니다. 액제 중에서 설사를 잡는 스멕타현탁액이나 진정 효과가 있는 우황청심원현탁액 등 현탁액은 약효성분이 가라앉는 특징이 있어 복용 전 반드시 흔들어 섞어줘야 합니다. 물약의 보관 기관은 개봉 후 한달 정도로 대게 냉장고가 아닌 실온에 보관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삼키지 않고 입에서 녹여 먹는 약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구강붕해필름인데요, 최근 비타민제나 발기부전치료제 등으로 출시돼 일반인에게도 친숙한 제형입니다. 약효성분이 소화기관을 거치지 않고 구강 점막을 통해 바로 혈액에 흡수돼 삼킴 장애가 있어도 복용이 가능하고 효과도 빠르게 나타납니다. 물 없이도 먹을 수 있고 필름처럼 얇아 휴대가 간편하다는 장점도 있죠. 최근에는 천식·B형 간염 등 다양한 질환의 치료제로 구강붕해필름의 적용 범위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다만, 구강붕해필름은 유효성분에 따라 특유의 쓴맛이 날 수 있고 녹기 전에 물을 마시면 오히려 약효가 떨어져 주의해야 합니다.
도움말 : 강동성심병원 약제팀 권선영 약사, 참고도서 『몸을 위한 최선 셀프메디케이션』
References: 중앙일보 헬스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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